jump to navigation

China’s New Foreign Investor M&A Provisions August 19, 2009

Posted by tribune in Int'l Econ Law.
Tags: , , ,
add a comment

Timeline: Global Economy in Crisis (CFR) April 11, 2009

Posted by tribune in Globalization.
Tags: ,
add a comment

Let me put a useful link for understanding the global economy in crisis from historical perspective. The following link comes from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

Timeline: Global Economy in Crisis

신자유주의 교리의 허구성 April 9, 2009

Posted by tribune in Globalization.
Tags:
add a comment

신자유주의 교리의 허구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자크 사피르

최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경쟁이 매출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기업의 고용을 촉진시킨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 원칙이 주장하는 미덕은 학문적 근거라기보다는 타산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원론을 내세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모든 논쟁을 배제하고 있으며, 그리고 기업은 경제학자들의 선택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핵심 논거로 흔히 들먹이는 이른바 경제학적 ‘확신’이 정치 토론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러한 ‘확신’ 때문에 보호무역, 공기업의 긍정적 역할, 국가의 개입과 같은 주제들이 토론의 장에서 배제되어버린다. 한 마디로, 경제학적 ‘확신’은 ‘객관성’이라는 미명하에 좌·우파에 관계없이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확신’이 엄밀한 과학적 기반에 근거한다면야 그걸 반박한다는 게 가당찮은 일일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기반이 의심스러운 것으로 밝혀진다면, 경제학적 ‘확신’이 토론의 장에서 군림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일 뿐만 아니라 반민주적 횡포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경제학적 ‘확신’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경제학이 과학성을 주장하려면 검증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실증적 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1). 그런데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은 이러한 제약들을 아예 무시해버린다2).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이 주로 내세우는 사이비 ‘확신’들 중 하나는 경쟁이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3).

경쟁의 선도적 역할을 믿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은 거시경제에서는 자유무역의 우위를, 미시경제에서는 유연성의 우위를 정당화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쟁원칙을 유럽연합헌법의 금과옥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교리는 데이비드 흄, 베르나르 드 망드빌, 아담 스미스 같은 18세기 고전주의 경제학 창시자들의 저서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각각의 개인들이 최대한의 이기적인 목표를 좇아 서로서로 경쟁하다 보면 저절로 집단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했다. 바로 이것이 흄의 자유무역 일반론, 망드빌의 〈꿀벌 이야기〉, 아담 스미스의 저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세 학자의 논거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허구임이 밝혀진다.

경제학자들의 허구적인 논리

세계무역기구(WTO) 지지자들이 거의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즐겨 인용하는 흄의 국제무역 자동균형이론을 보기로 하자. 이 이론은 비현실적인 가설들, 특히 경제 주역들이 현실에서 얻은 완벽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가설, 그리고 수요와 공급 간에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내부에서도 대가없는 즉석 조정이 이루어진다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급자의 관점에서는 물론이고 수요자의 관점에서도 재화와 서비스가 서로 완벽하게 대체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망드빌의 주장을 보자. 꿀벌이 그럴 지혜도 그럴 의도도 없었는데도 꿀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기주의나 야망 같은 개인의 악덕들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흔히 ‘집단의 미덕’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온갖 문학적 상상력이 지어낸 허구이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시장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그 어떤 시스템보다도 더욱 자율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조절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의 매커니즘을 단 한 번도 입증한 적이 없다. 역사학자 장-클로드 페로가 명확하게 규명한 바 있듯이, 이 ‘보이지 않는 손’의 매커니즘을 아무리 과학적인 담론으로 정립하려고 시도해봐야 결국은 종교적 성질의 ‘아포리아(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세 학자들은 자연법칙에 거의 가까운 ‘법칙들’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목적을 좇고 있었다. 흄은 자유무역이 만인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한 국가 간의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4). 망드빌과 스미스는 경쟁이 조성하는 자생 조직 덕분에 계몽 군주의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기껏해야 흄의 평화주의나 망드빌과 스미스의 전제정치 거부에 대해서만 공감이 갈 뿐이다. 하지만 사이비 과학 담론을 제도화하려는 의도와 학문상의 진정한 논증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무렵에 이르러 경쟁이론이 다양해졌다. 세 개의 학파가 등장했다. 첫 번째 학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레옹 발라스(1834-1910)의 주장대로, 경쟁논리가 한쪽의 수요와 다른 쪽의 수요 대처 능력 사이의 균형을 이루어낸다고 생각한다.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는 이러한 경제적 균형 그 자체가 곧 사회적 균형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현실 경제의 다양한 문제들에는 오직 단 하나의 대답밖에 없을 터인 바, 경쟁이 경제적 차원에서나 사회적 차원에서나 공히 최적의 답안인 셈이다. 따라서 모든 토론은 끝나버린다5).

발라스와 파레토의 이론이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학파가 탄생하게 되었다. 루드비히 폰 마이스(1881-1973)와 프리드리히 폰 하이예크 같은 학자들이 대표주자로 꼽히는 소위 ‘오스트리아 학파’이다. 이들에 따르면, 경쟁은 자생적 매커니즘이 아니라 가장 비효율적인 해결책들을 제거해 나가는 신(新)진화론적 과정에 해당된다.

세 번째 학파에 따르면, 경쟁은 무엇보다도 개혁의 동력으로서 현실에 더욱 적합한 새로운 해결책이 부상하게 되면 낡은 해결책은 곧 파기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균형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경쟁이란 단지 경제활동의 지속적인 변혁의 도구일 뿐으로, 이를 곧 ‘창조적 파괴’라 부른다. 이 이론을 정립하는 데에 가장 크게 기여한 조셉 슘페터(1833-1950)는 18세기 사상가들과 똑같은 야심을 품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경제를 탈정치화 하는 것, 개인의 의식적이고 계산적인 행위를 내재적 ‘법칙들’로 갈음하려는 것이었다6).

세 학파는 서로 통할 수도 없고 양립될 수 없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현대식 신고전주의 학파를 창시한 케네스 애로우와 제라르 드브뢰가 조작한 발라스-파레토 모델의 가설을 인정한다면,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도 슘페터의 이론도 수용할 수 없게 된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하이예크의 가설에 들어가면 균형이론은 전혀 참조 대상이 될 수 없다. 세 이론은 중첩되기보다는 서로를 배제한다.

또 하나의 골칫거리는 신자유주의 이론의 출발점에 있는 가설이다. 일반균형이론에 필요한 경제주체들의 완벽하고 완전한 정보에 대한 가설은 경제주체들을 전지전능한 자로 간주하지 않는 한 황당무계한 가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설은 일반균형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경제주체들의 정보가 불완전하고 불균형하다고 인정하면, 시장은 효율성을 잃게 되고, 경쟁은 균형을 잃게 되고, 공적 개입이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이론가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7).

이 세 가지 이론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필요한 또 다른 가설들도 신빙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애로우와 드브뢰의 모델은 개인의 선호도에 관련된 서열이 개인의 상황이나 주변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만일 B라는 재화보다 A라는 재화를 선호하고, C보다는 B라는 재화를 선호한다면, 모든 상황에서 동일한 선택이 이루어질 것이고, 또한 동일한 선택 상황에 처할 경우, 우리의 선택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이예크가 고안해낸 선택 과정도 이러한 선호도가 시간이 지속되어도 동일하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들이 완벽하게 비교 가능해야 하며, 따라서 우리가 선호하는 것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경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견해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모든 경험들로부터 동일한 추억들만이 남아 있어야 하고, 이 경험들은 단지 오래된 것이거나 최근의 것이라는 차이만 있어야 한다. 이를 수학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과거 경험의 평균치에 반응하는 것이지 어느 특정한 최고치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슘페터 모델로 말하자면, 개혁이 빚어내는 충격들이 더 이상 우리의 선호도 구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안전보다 이득을 선호하거나, 아니면 그와 반대로 이득보다는 안전을 선호한다. 만족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개혁적인 재화가 가져다주는 서비스의 폭이 낡은 재화들의 서비스 폭과는 아주 다를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개인들의 행동양식과 관련된 이러한 가설들은 모두 1970년대 이후 시험대 위에 올랐고8), 엄밀한 규준에 따라 반복적으로 실시된 테스트에서, 즉 과학적 실험을 방불케 하는 테스트에서 근거가 없음이 이미 속속들이 밝혀진 바 있다. 의사가 제시한 두 가지 처방 가운데 우리가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그 선택의 결과 수술 후에도 생존의 희망이 있느냐 아니면 사망할 가능성이 있느냐에 따라 완벽하게 다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재화에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가격은 우리가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재화에 대한 가격이 아니다. 우리가 이득을 선호하느냐, 아니면 안전을 선호하느냐는 갑작스럽게 바뀔 수 있다. 때로는 돈으로 지불되기도 하고 때로는 현물로 지급되기도 하는 동일한 복권 놀이에 참여한 실험대상자들을 보면, 늘 한결같이 반응할 것으로 추정했는데도, 도중에 전략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지막으로, 검진 받는 도중 지속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중간 정도의 고통과 아주 짧은 순간에만 느끼는 강렬한 고통 가운데, 우리는 후자를 더 빨리 잊어버린다. 이러한 결과들은 ‘선호도와 전략의 안정성’이라는 신고전주의 모델의 가설들뿐만 아니라 하이예크와 슘페터 모델의 가설들 또한 무너뜨려버린다.

사실, 우리의 선호도는 선택의 여건(구조화효과framing effect)이나 우리의 재산(재산유지효과endowment effect)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의 인지 체계는 점진적인 변화보다는 변화의 정점에 더욱 생생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요인이 도입되면 언제든지 우리의 선택 모델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이중의 중죄

상기 이론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가설은 주변여건이나 개인적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주체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는 ‘개별경제주체’ 모델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델의 이론적 근거가 대부분 정당성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것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1세기 벽두에 있는 우리가 18세기 말의 상황으로 되돌아간 꼴이다. 인간사회에서 생산-교환-소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연구는 마땅히 해야 할 연구 프로젝트인데, 순전히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으로 인해 왜곡되어 버렸던 것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기로 하자. 러시아가 민영화에 착수했을 때나10) 엔론, 월드컴, 파르말라트 사건이 터졌을 때처럼11) 소위 ‘전문가들’이 연루되었던 이런저런 스캔들을 보면, 이들의 목적은 흄과 망드빌 그리고 스미스가 추구했던 목적보다는 분명 고상하지 못하다.

권력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든 아니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든 간에, 이런 식으로 자신의 학문을 팔아먹음으로써 몇몇 경제학자들은 이중의 윤리적 중죄를 저질렀던 셈이다. 하나는 황폐한 사회를 초래한 경쟁 신화를 학문적 진리 내지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확신’으로 내세우려 시도함으로써 민주주의에 역행한 죄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진정한 경제학 연구의 정당성을 훼손함으로써 학문 탐구에 대한 이상(理想) 자체에 역행한 죄이다.

1)Bruce J, Caldwell, “Economic methodology:rational, foundations, Prospects”, in Uskali Maki, Bo Gustafsson et Christian Knudsen, Rationality, Institutions & Economic Methodology, Routledge, Londres et New York, 1983.
2)Daniel M, Hausman, The Inexact and Separate Science of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Royaume-Uni), 1994 참조, 특히 13장의 “On dogmatism in ectoproctes:the case of preference reversals” 을 읽을 것.
3)Frederic Lordon, “Et les lendemains n’ont pas chante”, 2005년 5월호.
4)David Hume, Discours politiques, Abbe Le Blanc의 1755년 불역판, 장-클로드 페로의 위의 책에서 흄과 튀르고의 대담 분석 참조. 237-255쪽.
5)Les Trous noirs de la science economique, Albin Michel, Paris, 2000.
6)Jacques Genereux, Les Vraies Lois de l’economie, Seuil, Paris, 2002.
7)Sandford J. Grossman et Joseph Stiglitz, “On the impossibility of informationally efficient markets”, in American Economic Review, pittsburg, vol 44 n. 2/1980, pp. 451-463.
8)Daniel Kahneman, “New challenges to the rationality assumption” Amos Tversky “Rational Theory and Constructive Choice” in Kenneth J. Arrow, Enricon Colombatto, Mark Perlman et Christian Schmidt, The Rational Foundation of Economic Behaviour, Saint Martin’s Press, New York, 1996.
9)Daniel Hausman, The Inexact and separate Science of Economics, 13장. Hazel Henderson, “Prix Nobel, l’imposture”, 2003년 12월호.
10) Nina Bachkatov, “Le klemelin contre les oligarques”, 2003년 12월호.
11)Thomas Franck, “Enron aux mille et une escroqueries”, 2002년 2월호.

Smart Power April 8, 2009

Posted by tribune in Int'l Politics.
Tags:
add a comment

Globalization & Neoliberalism April 8, 2009

Posted by tribune in Uncategorized.
Tags:
add a comment

▶ Globalization


How Globalization Is Changing the World (Wharton)
Is it really happening? Does it produce convergence in social, political and organization patterns?
Does it threaten nation-state or welfarestate? Is it different from modernity? Is a global culture in the making?


     ☞ Is Globalization Civilizing, Destructive, or Feeble? (Wharton)
         – A Critique of Five Key Debates in The Social Science Literature 


Globalization: More Producers, Not Enough Consumers (Wharton)
- Globalization, Change, Myth, or Reality?

Corporate Governance and Globalization: Arguments and Evidence Against Convergence (Wharton) 


▶ Neoliberalism


What is Neoliberalism? (Corp Watch)

The Failure of Neoliberalism (IHT)

Globalization & Neoliberalism (J. Bradford DeLong)

Neoiberalism: Myth and Reality (Martin Hart-Landsberg)

Is This Really The End of Neoliberalism? (David Harvey)